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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꿍시렁

돌은 픽셀보다 비싸다

가상현실 세상이 오고 있다. VR, AR 등의 용어가 낯설지 않다. 누군가는 그와 같은 기술들이 어설프고 쓸만해지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지만 언제까지나 어설프고 얄궂게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이 글의 요지는 이거다.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현실 세계에서의 '체험'이나 '사물'들의 가치는 훨씬 더 비싸질 것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정 반대의 생각이 맞아야 한다. 모두가 가상현실 속의 바닷가에서 허우적 대느라 실제로 존재하는 바닷가에 아무도 가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바닷가를 즐기기 위한 비용이 더 저렴해지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바닷가로 가는 도로는 차가 막히지 않을 테고 사람이 없는 모래사장 위에 파라솔을 설치하거나 대여하기도 훨씬 쉬울 테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다른 길로 잠시 새어나가 보자.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그들 중에서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다.



즉,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좋은 장소와 좋은 시간에 만나기 위해서는 양쪽 다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회생활에 깊게 빠져들어 있을수록 두 사람에게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과 시간을 정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어려움은 더해진다.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는 시간과 이동을 위한 비용을 다른 이들보다 더 감수해야 한다. 적당한 시간을 정하지 못한다면 어느 한 사람은 다니는 직장에 월차를 내거나 또 다른 일정을 포기하는 비용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돈을 쓴다. 


휴가철 고속도로나 휴양지를 가득 채우는 차와 사람을 피하기 위해 더 먼 곳으로 떠나려 한다. 지정된 면적당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이다. 가족들만 오붓하게 쉴 수 있는 경치 좋은 섬이나 해변을 얻기 위해서 능력이 있다면 기꺼이 그만큼의 돈을 지불한다. 여력이 되지 않는 다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으로 가거나 또 다른 비용과 운을 동원해서 그렇지 않은 곳을 찾는 수밖에 없다. 물론, 능력이 엄청나다면 꽉 막힌 도로나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을 피하기 위해 요트나 헬리콥터 혹은 전세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이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피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무한한 공간 안에서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금세 만나거나 원하는 만큼의 공간을 확보해서 함께 쉴 수가 있다. 게다가 북적거리는 고속도로를 기어가는 시간과 스트레스, 목적지에 도착해서 또다시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있는 스트레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당연하지 않을까? 내 몸이 하늘을 날아갈 수도 있고 목적지가 나에게 올 수도 있다. 해당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더 실감나는 체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 받아야 할 스트레스를 굳이 감당할 게 아니라면 가상현실의 세계를 이용하는게 다반사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정을 정하고 숙박시설과 비행 편을 찾아 예약해야 하는 모든 번거로움과 필요한 행동들을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푸는 비용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린 가상현실의 세계를 접하고 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해 애를 먹기도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굳이 4D 경험이 아니더라도) 스릴과 공포를 느끼거나 게임에 빠져들었던 기억들이 그것이다. 그 보다 훨씬 작은 스마트폰의 스크린에도 금방 몰입하는 모습을 우리는 경험한다.



물론,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완벽한' 가상현실 세계의 체험을 겪어 본 사람들이 없기에 아직까지 '완벽한' 가상현실 세계에 대한 '상상'이 미흡하여 이해가 잘 안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얘기해 보겠다. 굳이 오감이 장악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각종 스크린의 영상에 빠져드는 경험을 한다. 즉, 단순하게 눈과 귀만 어설프게 만족시킴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다. 그 와중에 코와 촉각의 일부를 속이는 기술이 동반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몰입하게 될까? 이미, IMAX나 4DX 영화에 매료되어 그 경험에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허다하다.


게임 중독, TV중독, 스마트폰 중독... 에 관한 문제도 큰 그림에서 그와 같은 현상들이라고 생각한다.


via Steve Cutts / Boredpanda


뿐만 아니라 가상의 현실을 좀 더 실제처럼 전달하기 위해 귀와 눈뿐만 아니라 후각과 촉각까지 완벽히 착각시키려 하는 기술의 연구가 부지런히 진행되고 발전하고 있다. 그와 같은 완벽한 가상현실 환경이 일상생활에 스며든다면 어떨까?


시야와 귀를 장악하는 것 만으로도 가상의 현실을 체감하는 수준이 높은 이들이 많다. 그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지금 보다 더 많은 '가상현실' 중독자가 양산될 것이다. 


'눈과 귀만 착각시켜도 그 몰입도는 엄청나다'


- 진짜 세상에서 진짜 총을 마음껏 쏘아보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게임 속에서 레이저를 쏘거나 우주 전투기를 몰아 볼 수 있다.

- 누군가가 방문하는 지구 반대편이나 화성의 세상을 텔레비전으로 감상하고 (이미)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더 큰 스크린의 확보를 통해 실제와 같은 느낌을 얻기도 한다.

- 아이언맨과 헐크가 신나게 빌딩을 부숴대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기 위한 비용과 4DX 영화 티켓값의 차이를 비교해 보라.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하면 내가 직접 빌딩을 부숴볼 수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은 우리의 시간과 돈을 포함한 각종 비용을 무차별적으로 저렴하게 만들 것이다. 현실 세계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길거리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손에 쥐기 위한 비용과 가상세계에서 그를 위해 발생하는 비용을 비교해 보자. 두 경험에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우리는 흔쾌히 뒷목에 커넥터를 연결하지 않을까?


출처: http://yournewswire.com/darpa-matrix-brains-computers/



그렇다면 진짜 세계, 진짜 세상을 만끽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사람이 없는 실제 세상의 바닷가에서 선탠과 수영을 즐기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사람이 오지 않는 해변을 위해 해당 장소로 가기 위한 비행 편이나 도로 그리고 숙박 시설이나 기타 편의 시설들이 생겨나거나 유지될 리가 없다. 버스, 지하철, 택시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바닷가는 존재하지 않는 비행 편과 도로가 없는 길을 관통할 수 있는 방법(경비행기나 헬리콥터), 임시 숙박 시설과 기타 편의 시설 그리고 소요되는 시간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즐기게 된다. 


감이 오지 않는가? 부자들이 실제 세상을 즐기게 된다는 말이다.



무차별적으로 저렴해질 수 있는 가상현실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기술과 역량이 집중될수록 현실 세계의 유지 비용은 상대적으로 비싸지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유지를 위해 발생하는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실제 세상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 가상 세계에서 하와이에 도착하여 해변을 즐기는 시간과 비용을 시간당 1000원 꼴이라고 가정해 보자.(현재의 게임방처럼)

그리고, 실제 세상에서 하와이행 비행 편과 숙소를 위한 비용을 계산해서 비교해 보자. 

- 가상 세계에서 레고 블록을 가지고 63빌딩만 한 작품을 완성했다. 실제 세상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해내기 위한 비용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몇 평의 공간과 가상현실 기계가 있으면 원하는 모든 체험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굳이 실제 세상의 문 밖을 나설 필요가 없다.


실제 세상이 지옥이고 시궁창이거나 살기 힘든 사람일수록 가상현실의 세계는 현실 도피를 위한 훌륭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굳이 '저렴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는 이들은 '현실 세계'를 지속적으로 장악해 갈 것이다.


출처: https://vincent.io/21st-century-opium/

영화 '인셉션' - "꿈은 그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림같은 경치 좋은 해변에서 지금을 즐기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모니터 바탕화면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의 감상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미 현실 세계의 시각적 요소들은 픽셀로 표현되는 세계의 것들 보다 훨씬 비싸다. 그리고 시각요소 뿐만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요소들까지도 비싸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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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이 집구석 주인장의 브런치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