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수리점 — 오후, 늦은 시각
한산한 오후. 강준이 부품을 정리하고 있다. 문이 열린다. 김순옥(54)이 들어온다. 노트북을 양손으로 꼭 쥐고 있다. 가방에 넣지 않고, 그냥 안고 왔다. 강준이 고개를 든다.
김순옥
저, 사진을 지워버렸는데— 복구가 되나요?
강준
언제 지우셨어요?
김순옥
한... 열흘쯤 됐어요. 실수로.
강준
그 이후로 노트북 많이 쓰셨어요?
순옥이 잠깐 멈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지난 열흘을 더듬는 것 같다.
김순옥
안 썼어요. 지우고 나서 한 번도 안 켰어요.
강준 — 내면
파일이 삭제되어도 데이터는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덮어써도 된다'는 표시만 남는다. 그 위에 새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다면, 복구 가능성은 충분하다.
열흘 동안 한 번도 안 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강준
한번 해볼게요. 맡겨두시고 연락드려도 되고, 기다리셔도 돼요.
김순옥
기다릴게요.
순옥이 입구 쪽 의자에 앉는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얹는다. 창밖을 보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을 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앉아 있다.
S#2 수리점 작업대 — 연속
강준이 노트북을 작업대에 올리고 파일 복구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스캔이 시작된다. 파일들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강준 (V.O.)
복구된 파일들을 처음 보는 건 항상 강준이다.
의뢰인보다 먼저.
그래서 강준은 파일 목록을 볼 때 표정을 관리하는 법을 오래전에 배웠다.
화면에 썸네일들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가족사진이다. 여행사진이다. 밥상 앞에서 웃는 사람들. 바다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그리고— 아이 사진이 많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놀이터에서, 밥 먹으면서, 자다가 찍힌 것들. 아이는 거의 모든 사진에서 웃고 있다.
강준 — 내면
평범한 가족사진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보게 된다.
복구 완료. 강준이 잠시 화면을 바라본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S#3 수리점 카운터 — 잠시 후
강준이 노트북을 카운터 위에 올리고 순옥에게 돌아선다.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의식적으로.
강준
복구됐어요. 거의 다 살아났어요.
순옥의 얼굴에 무언가가 지나간다. 안도인지, 다른 무엇인지. 카운터 앞으로 와서 화면을 들여다본다. 썸네일들을 천천히 훑는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스크롤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넘긴다.
그러다 멈춘다. 아이의 얼굴 사진 하나. 놀이터인지, 어딘가 야외인지— 햇빛이 밝다. 아이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눈이 반달이 되도록.
순옥이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펼친다. 아이의 얼굴이 커진다. 더 커진다. 화면에 얼굴이 가득 찬다. 순옥이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오래.
그리고 고개를 들어 강준을 본다. 목소리는 조용하다. 담담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김순옥
이 정도면— 무난하게, 예쁘게 잘 나온 거죠?
강준이 그 말을 듣는다. 아이의 웃는 얼굴이 화면에 가득하다. 그 얼굴을 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저렇다. 저 목소리가 저렇다.
강준 — 내면
아차.
강준이 웃음을 거둔다. 아주 자연스럽게. 티 나지 않게. 표정을 바꾸지 않으면서, 그러나 웃음만 지운다. 0.5초.
강준 — 내면
가끔 있었다. 이런 요청이.
복구된 사진들을 보다가 짐작이 가는 경우.
그럴 때는 조용히 마무리하는 게 일의 예의라는 걸, 강준은 알고 있다.
그런데 아이 사진은 처음이다.
저렇게 웃는 얼굴이 화면에 가득한 채로, 어머니가 저렇게 묻는 건 처음이다.
강준
네. 잘 나왔어요.
짧게. 그냥 그렇게. 강준은 더 말하지 않는다. 순옥도 더 묻지 않는다. 화면 속 아이를 한 번 더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다시 줄인다. 썸네일들이 다시 작아진다.
김순옥
얼마예요?
강준
오만 원입니다.
순옥이 지갑에서 현금을 꺼낸다. 오만 원권 한 장. 강준이 받는다. 영수증을 내밀려다 멈춘다. 그냥 서랍에 넣는다.
김순옥
감사합니다.
순옥이 노트북을 안고 나간다. 올 때처럼, 가방에 넣지 않고. 그냥 두 손으로. 문이 닫힌다.
S#4 수리점 — 연속
강준이 카운터 뒤에 서 있다. 잠시 그대로 있다. 창밖으로 순옥이 골목을 걷는 뒷모습이 보인다. 노트북을 안은 채로 천천히.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는다.
강준 (V.O.)
이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작은 기계 안에 무엇을 넣어두는지.
거짓말을 넣어두는 사람도 있고, 자랑을 넣어두는 사람도 있고, 비밀을 넣어두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것 말고는 아무 데도 남겨두지 못한 것들을 넣어두는 사람도 있다.
강준은 그런 날은 오래 앉아 있지 않는다. 셔터를 일찍 내린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된다.
강준이 작업대를 정리한다. 오늘 복구한 사진 파일의 개수가 적힌 작업 메모를 본다. 잠깐 보다가, 그냥 접어서 서랍에 넣는다. 그리고 셔터를 내린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 EP. 03 끝 —